결론을 먼저 정하지 않기로 했다
뉴스비평을 쓰면서 AI에게 자주 물었다.
“이거 중립적인 거 맞아?”
처음에는 감정이 없는 AI라면 사람보다 중립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질문이 달라졌다. AI에게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 결과까지 중립적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내가 결론을 담아 질문하면 부반장은 그 결론을 설명하는 데 능숙했다. 반대 자료를 찾으라고 하지 않으면 내가 듣고 싶은 답을 더 매끄럽게 만들어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제주 무사증과 중국인 관광객을 다룬 특별기고를 시작할 때 한 가지를 정했다.
결론을 먼저 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판단을 피하기 위한 약속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더 분명하게 판단하기 위해, 내가 이미 가진 마음과 자료 사이에 거리를 두는 방법이었다.
중립적인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고르지 않는다. 어떤 기사를 멈춰 읽었다면 이미 관심이 있고, 불편함이나 의심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제주, 중국인 관광객, 범죄, 실종, 무사증이 한꺼번에 거론되는 모습을 보면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 마음을 없애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마음이 사실보다 먼저 결론이 되는 일이었다.
결론을 가진 채 조사를 시작하면 검색은 쉽게 증명 작업으로 바뀐다. 내 생각에 맞는 숫자는 중요한 근거로 보이고, 맞지 않는 숫자는 예외처럼 보인다. 연결 자료가 없을 때에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이야기로 빈칸을 채우게 된다. AI는 이 일을 아주 빠르게 도와줄 수 있다.
중립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출발했는지 알고, 그 생각이 사실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붙드는 태도에 가까웠다.
양쪽에 같은 무게를 주는 것이 중립은 아니다
중립을 찬반 문장을 같은 수로 배치하는 일로 오해할 때가 있다. 한쪽에서 두 가지를 말했으니 반대쪽에서도 두 가지를 찾고, 비판했으니 칭찬도 하나 붙이는 식이다.
하지만 충분한 자료가 있는 주장과 근거가 약한 주장을 반씩 나누면 사실은 더 흐려진다.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같은 자리에 세우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뉴스비평에서 택한 기준은 기계적 중립보다 공정성과 근거 비례성이었다.
기사의 취재가 새 사실을 밝혔으면 구체적으로 인정한다. 반론이 더 강하면 처음 결론을 좁힌다. 양쪽 모두 자료가 부족하면 모른다고 남긴다. 비판의 강도는 확인된 근거의 강도를 넘지 않게 한다. 좋은 취재를 억지로 깎지 않고, 균형을 꾸미려고 작은 흠을 키우지도 않는다.
어느 편의 가운데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놓인 자리로 움직이는 것이다.
결론을 미루자 불편한 사실들이 함께 남았다
제주 특별기고에서는 무사증의 역사, 중국인 관광객 규모, 외국인 범죄, 실종 신고, 도민의 불안, 중국자본을 따로 살폈다. 각 편은 맡은 질문에만 답하고 종합 판단은 마지막 글까지 미뤘다.
조사 결과는 한쪽 이야기로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컸고, 외국인 피의자 가운데 중국인의 비중도 높았다. 무단이탈과 불법체류, 경찰의 실종 사건 처리 실패도 실제 문제였다. 도민의 불안을 편견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동시에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기간에 성인 실종 신고는 줄었다. 중국 국적 피의자 가운데 무사증 관광객이 몇 명인지도 공개 자료로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 범죄와 한국인 실종이 함께 폭증했다는 인과는 드러나지 않았다.
결론을 먼저 정했다면 어느 한쪽은 잘라냈을 것이다. 무사증을 옹호하려 했다면 실제 관리 실패를 작게 만들었을 것이고, 폐지를 주장하려 했다면 확인되지 않은 연결을 사실처럼 채웠을 것이다.
마지막에 남은 판단은 찬성과 반대의 절충이 아니었다. 확인된 문제는 인정하되, 확인되지 않은 원인까지 단정하지 않는 제한된 결론이었다.
AI에게 중립을 요구한다는 것
AI를 감정 없는 판사로 세울 생각은 없다. 부반장은 내가 준 질문과 자료, 규칙 안에서 움직인다. 내가 원하는 결론을 써달라고 하면 그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람의 바람 대신 절차를 넣었다. 결론보다 근거를 먼저 보게 하고, 사실·당사자의 주장·기사의 해석·우리의 추론·확인할 수 없는 부분을 나누게 했다. 기사에 불리한 자료뿐 아니라 결론을 지지하는 자료도 남겼다. 기자의 의도는 가장 늦게 판단하고, 직접 근거가 없으면 제목과 편집이 독자에게 만든 효과까지만 설명했다.
AI에게 요구한 중립은 말투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결론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작업 규칙이었다.
마음보다 사실을 먼저 놓는 일
결론을 먼저 정하지 않는다고 마지막까지 입장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료가 충분하면 분명하게 말하고, 근거가 약하면 그만큼 좁게 말한다. 틀린 판단이 확인되면 고친다. 독자가 내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떤 자료에서 어디까지 판단했는지는 다시 따라갈 수 있게 남긴다.
이것이 내가 뉴스비평에서 말하고 싶었던 중립의 철학이다.
사실을 지키는 중립은 마음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진실을 앞서지 않게 붙드는 일이다.
마음이 없어서 결론을 미룬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결론을 먼저 정하지 않기로 했다.
관련 뉴스비평: http://blog.naver.com/ah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