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함께 기록하고, 함께 벼리는 AI 대장간

AI를 쓰는데 왜 더 바빠졌을까

AI를 쓰면 일이 편해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복잡한 자료를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코드를 작성하는 일은 분명 전보다 쉬워졌다. 예전 같으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도 이제는 말 몇 마디로 첫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하루가 편해졌느냐고 물으면 답이 달라진다. 요즘 나는 AI를 쓰기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시간을 아낀 만큼 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또 다른 일을 시작한다. 심지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만들어서 한다.

시작하기 쉬워지자 끝내야 할 일이 늘었다

예전에는 구현할 방법을 모르거나 비용이 커 보여서 접었던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작은 도구 하나쯤은 바이브 코딩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시켜보면 화면이 뜨고, 기능도 어느 정도 움직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불편 하나를 줄이려던 일이었다. 만들기 시작하면 로그인과 데이터 저장이 필요해지고, 예외 상황과 보안을 살펴야 하며, 백업과 운영 방법까지 정해야 한다. 반나절이면 될 것 같았던 일이 며칠짜리 프로젝트가 된다. AI가 시작 비용을 낮춰준 것은 맞지만, 끝내는 비용까지 없애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AI가 줄여준 것은 일의 수라기보다 ‘이건 내가 못 한다’고 포기하던 이유에 가깝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자 실제로 하는 일도 함께 늘었다.

잘 정비된 신입이 한 명 들어온 것 같았다

AI와 오래 일할수록 잘 정비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빨리 읽고, 시킨 일도 꽤 그럴듯하게 해낸다. 다만 우리 회사의 사정과 내가 중요하게 보는 기준, 이전에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모른다.

한 번 쓰고 끝낼 결과라면 짧게 설명하고 받아도 된다. 같은 일을 계속 맡기려면 달라진다. 어떤 파일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결과를 어디에 둘지, 무엇을 함부로 바꾸면 안 되는지, 어디에서 사람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예시를 보여주고, 틀린 결과를 되짚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규칙으로 남겨야 한다.

신입사원에게 일을 맡길 때도 비슷하다. 유능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첫날부터 모든 일을 맡기지는 않는다. 일을 잘하는 것과 조직의 맥락 안에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AI가 그 과정을 훨씬 빠르게 지나갈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직접 하던 실행 업무 일부는 줄었다. 대신 일을 쪼개고, 기준을 설명하고, 결과를 검수하고, 어디까지 확정할지를 판단하는 일이 늘었다. AI가 내 일을 대신했다기보다 나를 관리자로 바꿔놓은 셈이다.

큰 계획을 한 번에 밀어붙여도 끝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계획을 충분히 세우면 한 번에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체 구조를 짜고 순서를 나눈 다음 AI에게 차례로 실행하게 했다. 계획대로 빠르게 진행되는 구간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전제가 틀리거나 앞 단계의 결과가 다음 단계와 맞지 않으면 계획 전체가 흔들렸다. AI는 내가 정한 계획을 성실하게 따라갔지만, 그 계획이 실제 작업과 맞는지까지 미리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결과를 하나씩 확인하고, 확정된 판단을 기록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쪽을 택한다. 더 안정적이지만 빠르지는 않다.

생각한다 → 맡긴다 → 기다린다 → 검수한다 → 고친다 → 규칙으로 남긴다 → 다시 맡긴다

이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를 AI의 성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가 머릿속으로 처리하던 기준을 다른 작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과 문서로 바꾸는 데 시간이 드는 것이다. 반복할 일이라면 이 기록이 다음 작업의 비용을 낮춘다. 한 번 하고 말 일이라면,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보다 준비와 검수에 더 오래 걸릴 때도 있다.

기다리는 시간도 업무 시간이었다

AI가 답을 만드는 동안 나는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앞에서 무엇을 시켰는지 기억한 채 결과를 기다리고, 결과가 오면 바로 검토할 준비를 한다. 다른 일을 시작하면 다시 돌아왔을 때 맥락을 읽어야 한다.

질문이 짧다고 답도 빨리 오는 것은 아니었다. 자료를 많이 읽거나 여러 단계를 처리하는 작업은 내가 말을 마친 뒤에도 오래 이어졌다. 빠른 피드백을 기대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몇 분의 대기가 더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 일을 동시에 맡기면 기다림이 없어질 것 같지만, 이번에는 검수할 결과가 한꺼번에 쌓였다. AI는 병렬로 일하고 나는 한 번에 하나씩 읽는다. 실행의 병목은 줄었지만 확인의 병목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었다.

편해진 일과 줄어든 일은 같지 않았다

AI는 분명 일을 편하게 해준다. 다만 ‘한 가지 일을 수행하기 쉬워졌다’는 말과 ‘내가 해야 할 전체 일이 줄었다’는 말은 같지 않다.

내 경우에는 AI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혔고, 그만큼 시작하는 일의 수도 늘렸다. 직접 만드는 시간은 줄었지만 지시하고 기다리고 검수하고 기록하는 시간이 생겼다. 아직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돌아가는 도구라기보다, 빠르게 배우는 새 동료와 함께 일하는 단계에 가깝다.

언젠가는 충분히 익숙해져 내가 손을 덜 대도 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다만 그때의 나는 아마 남는 시간에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AI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는 말과 AI 때문에 더 바빠졌다는 말은 내게 모순이 아니다. 요즘은 둘 다 사실이다.

AI와 일하는 방식 전체 보기